
1. 또 다른 가을의 전설
최근 이 년동안 내가 읽은 책들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이청준'과 '글쓰기' 였다. 이를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60년대 한국문학'과 '논문'이 이 년동안 내 독서의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내 일상의 키워드이기도 했다. 자나깨나 그 생각. 뭐? 아! 그 놈의 논문! 하지만... 논문은 이제 끝났고, 그와 동시에 이 키워드들도 나로부터 멀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60년대 한국문학'을 더이상 읽지 않는다거나, '글쓰기'에 관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언젠가 서정인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 봐야 하고, 빠른 시일내에 최인훈 전집 중에서 미처 구입하지 못한 책들을 사야 하고, 내년 수업을 위해서 마종기 시 전집을 읽어야 한다.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이 '-해야 한다'라는 당위라기 보다는 '-하고 싶다'는 소망에 더 가깝다. 문제는 이 모든 책들을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럼, 요즘 내 일상, 또는 독서의 키워드는? 1학기 논문 심사가 끝난 후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라는 수업이었다. 그래서 2학기의 키워드는 이 수업에 등장했던 네 명의 작가였다. 셰익스피어, 까뮈, 이청준(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이 중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작가는 셰익스피어였는데, 그 것은 곧,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이기도 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이기도 하면서, 셰익스피어가 포함되어 있는 연극 전체에 대한 열망이기도 했다. 근데, 이 수업도 끝났다. 그리고 <문학, 의학...>수업이 끝나면서 후두둑 떨어져 은행들과 보도블럭을 뒹굴고 있는 낙엽들과 함께 가을이 훌쩍 와버렸다. 떨어진 잎들이 무색하게도 아직도 낮기온이 이십도에 이를 정도로 포근하긴 하지만...... 어쨌든 가을은 왔다.
가을이니까 어딘가 허전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찌질한 궁상 따위는 집어 치우자. 사실 가을은 좋은 계절이다. 왜냐고? 가을의 전설이 기다리고 있는 포스트 시즌 야구가 있는 계절이니까! 만세! 기아 우승!!! 물론 가을은 야구 팬들에게는 가을의 전설을 관람하기 위한 계절이지만, 동시에 연극을 위한 계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는 일년중 가장 좋은 연극들이 가장 많이 공연되기 때문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시작되었다. 올해의 주제는 '셰익스피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예술제에 초청된 극단들이 모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연극, 무용, 퍼포먼스, 인형극......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이 중에 두 편의 <햄릿>이 공연된다. 하나는 극단 여행자가 양정웅 연출로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극단의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서울 국제 공연예술제 출품작은 아니지만 연희단 거리패의 고정 레퍼토리인 <햄릿>이 눈빛극장 개관기념으로 공연된다. 그러니 올 가을에는 세 편의 <햄릿>이 오르는 것이다. 세 편 모두를 보려 했는데, 이탈리아 극단의 것이 시간이 안 맞는다. 가장 보고 싶은 공연이었는데......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2. 한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
90년대에, 그러니까 대학생때,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연출가는 오태석이다, 라고 생각했다. 오태석이 누구? 놀랍게도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가 만든 연극을 본 적도 없지만, 덧붙여 그가 쓴 희곡을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연세대학교 학생들은 모두 그의 작품을 즐겨 불렀다. 불렀다. 앵? 그렇다면, 오태석은... 작곡가? 천만에!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자, 퀴즈 하나. 혹시 이 노래를 기억하시는지?
한 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
진리와 자유 심어온 모습
뒤 안에 우뚝한 무악같이
굳세고 슬기에 영원하여라
아하 연세 연세 내 사랑아
형제 자매 내 사랑아
'관악산 바라보며 무악에 들러-'로 시작하는 연세대학교 교가를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이 노래는 '연세찬가'이다. 그럼? 오태석은?
연세찬가의 작사가이다. 그가 이 노래를 왜, 언제 작사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연극을 만들기 위한 돈을 좀 벌어보려고 응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오태석이 연출한 연극을 많이 보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했던 작품은 둘이다. 하나는 91년에 공연한 <백구야 껑충나지마라>이고, 다른 하나는 95년에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오태석의 연극은 한국적인 전통 안에 있으면서 한국적인 전통의 바깥을 꿈꾸고, 드라마 속에서 있으면서 드라마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가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얻는 것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연극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적임' 관한 것이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전통극의 요소들을 통해서 초현실주의적 시공간을 보여준다.
한국의 역사가 오태석 작품의 주요한 소재이면서 '내용'이라면 그가 연극 속에서 사용하는 춤과 노래, 말은 그의 연극을 이루는 '형식'이다. 그의 연극 속에서는 퍼포먼스가 드라마의 일부가 되고, 드라마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현대사를 춤과 소리로 풀어낸 <백구야 껑충나지마라>는 드라마가 퍼포먼스가 되는 대표적인 예이다. 어쩌면, 오태석이라는 연출가의 가장 위대한 점은 퍼포먼스의 재발견이 아닐까 싶다. 어린시절에 그가 연극 속에서 사용하는 굿, 탈춤, 막춤(?)과 같은 자유자재의 퍼포먼스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95년에 호암아트홀에서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연극성과 한국성이 절정에서 만난 작품이다. 앞으로 평생동안 이런 연극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가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서 원수지간의 두 가문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국의 현실로 치환되고, 연극 속에서 사용되는 한국적인 퍼포먼스들은 한국적인 것을 넘어서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한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그러니까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쓴 드라마인지 오태석이 연출한 퍼포먼스인지가 구분이 잘 안되는 순간-이 연출가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이상적인 지점이 아닐까.
3. 두 개의 <햄릿>, 그리고 야구
2007년 이후 제가 정작 주목한 SK의 새로운 야구는 ‘뛰는 야구’도 뛰는 야구지만, ‘수비 야구’였습니다. 많은 야구전문가가 SK와 두산의 수비 야구를 높게 평가하는데요. 야구에서 가장 기본인 수비의 중요성이 SK와 두산 덕분에 드러났다는 생각입니다 -<박동희의 베이스볼 2.0> 김성근 감독과의 인터뷰 중에서 -
결국, 일요일날 눈빛극장 개관기념작인 이윤택 연출의 <햄릿>을 보고야 말았다. 이 연극을 굳이 일요일날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앞서, 그러니까 나흘 전에 본 극단 여행자의 햄릿이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몇가지 이유를 대보자면, 우선 연극의 기본기들이 너무 엉성하다. 프로극단이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주연배우의 발성이 불완전하며, 배우들끼리의 교감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대사 전달은 부정확하다. 심지어 번역도 이상하다. 아무리 훌륭한 대본과 휘황찬란한 무대장치들을 등에 업어도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배우의 말 한마디, 아니 외마디 숨소리이다. 무대장치와 뽐나는 조명만을 보기 위해서라면 세 시간은 너무 길지 않은가!
두번째는 양정웅이 연출한 퍼포먼스가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를 겉돌고 있다는 것이다. 햄릿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굿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라는 연출가의 전제에는 동의하지만 '굿'이라는 퍼포먼스가 셰익스피어 연극이 가진 모든 연극성을 모두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연극 안에서 드라마와 퍼포먼스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연출이 도입한 여러 형태의 '굿'이 약간의 볼거리를 제공할 뿐, 보편적이지도 그렇다고 극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단지, 연출가 자신의 낙인을 찍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이 연극의 나쁜 점은 퍼포먼스가 스토리 텔링과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리 텔링과 감정이입, 역시 연극이 전달해야 하는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요소들이다. (일종의 기본기!) 이 연극을 보고 아무런 감동도 어떠한 이해도 없었다면, 그건 연출가가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퍼포먼스만을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묵은 경구처럼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는 법. 퍼포먼스를 결정할 때는 '형식'보다는 '내용'을 우선해야 하고, '함량'이나 '종류' 보다는 '동기'를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대체 왜 '형식'을 위해서 자의적으로 '내용'을 바꾸며, 왜 원작에도 없는 '굿'이 필요한 것인가? 단지 죽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 글쎄, 만약 그게 전부라면, 퍼포먼스가 작품 내에서 서 있는 기반이 너무 미약한 것이고,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연극 속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스토리 텔링과 감정이입을 방해하면서 까지 퍼포먼스를 도입해야 되는 이유가 대체 뭘까? "
연극을 보는 내내, 졸고 있는 옆 좌석의 외국인 관객을 보면서, 그 질문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윤택의 <햄릿>은 양정웅의 <햄릿>이 가진 모든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와, 단 나흘만에! 유레카! 아니, 현대적인 셰익스피어극을 어떻게 만들어 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해야 더 적합할 것 같다. 이윤택의 햄릿은 셰익스피어 극을 무대화할 때 생기는 기본적인 문제들을 꼼꼼하고 섬세하게 해결하였다. 아든판을 완역한 대본은 이전의 대본들-우리들이 흔히 읽는 대본들- 을 읽으면서 애매모호했던 부분들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있다. 새로운 대본은 스토리 텔링을 매끄럽게 해주고, 캐릭터들을 보완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번역투와 문어체 말투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배우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드디어 진짜 '말'을 하는 배우들을 보게 된 것이다.
'words, words, words (말, 말, 말)"-<햄릿>의 대사 중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무대화할 때 겪는 두번째 문제는 리액션에 관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햄릿이 긴 대사를 하고 있는 동안 상대 배우는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건 관객들도 마찬가지 인데, 제 아무리 위대한 배우라 해도 16절지 한 바닥을 빼곡하게 채운 대사를 읊어댄다면 관객들은 졸게 마련이다. 이윤택은 이 문제를 굉장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해결한다. 상대 배우들이 서로 약속된 동작과 몸짓으로 리액션을 대신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A가 말하면서 움직이면 B는 피하면서 넘어지고, C와 D는 넘어지는 B를 받는 식이다. 그들의 리액션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과장되어 있고 인위적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마치 잘 짜여진 슬랩스틱 코미디 처럼.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이 연극을 보면, 굳이 한국적인 연극을 하기 위해서 굿이나 탈춤과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퍼포먼스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윤택이 연출한 <햄릿>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평범한 행위들도 예술이 된다는 것.
무덤을 중심에 둔, 단순한 듯하면서도 효과적인 무대장치, 절묘한 장면전환, 꺼질 듯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올림픽 성화와도 같은 조명, 독특하고 극적인 음향들...... 이 연극에 대해서 칭찬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나도 많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이기도 하다. 배운다고? 이제와서? 그런데, 대체, 뭘 위해서?
"The rest is silence. (나머지는 침묵일세)"-<햄릿>의 대사 중에서-
야구와 연극, 만약 이 둘이 공통점이 있다면, 둘 모두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것도 감동적인. 누구 말마따나 각본없는 드라마! 하지만 그것이 매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역전만루 홈런과 퍼펙트 게임이 멋진 일이긴 하지만, 탄탄한 수비와 성실한 주루 플레이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야구가 드라마가 되지 않는 것처럼, 발성, 말하기, 스토리 텔링, 교감과 같은 기본기가 바탕이 되지 않는 연극은 아무리 화려한 무대 장치와 조명으로 치장해도 드라마가 되지 못한다, 절대로!
그리고 이것이 야구와 연극이 내게, 또는 이 둘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공통의 가르침이다.
오태석,
이윤택,
햄릿,
셰익스피어,
양정웅,
극단목화,
연희단거리패,
극단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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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전설,
야구,
연극,
백구야껑충나지마라,
로미오와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