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4일
너희가 쿵푸를 믿느냐

큰애가 커 갈수록 같이 할 수 있는게 많아진다. 즐거운 일이다. 언젠가 친구에게 애가 크면 제일 해보고 싶은 게 야구 글러브를 끼고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해보는 거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성우가 돌이 되기 전 쯤이었던 것 같다. 성우는 벌써 일곱살이 되었다. 야구공으로는 못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캐치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어찌하다보니, 그때 그 시절 친구에게 했던 얘기가 분명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캐치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혹 성우가 성인용 야구 글러브를 낄 수 있게 되고 공을 멀리 던질 수 있게 되면 가능해질까? 그 때가 오면 그런 걸 하기엔 내가 너무 나이 들어버리게 될래나?
그때는 그때고 캐치볼은 캐치볼이다. 그것 말고도 큰 애랑 할 수 있는 일은 무지하게 많다. 축구, 농구, 유도, 야구 중계, 컴퓨터 오락, 맥도날드 가기. 그 중 제일 만만한 것은 영화보기! 영화보기 만큼 편한 게 또 있을까? 영화가 시작하면 아이들은 가끔씩 팝콘소리를 내면서 조용해지고 그때쯤 되면 나도 영화에만 집중하면 된다. 재밌는 영화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지루한 영화라도 상관없다. 오고, 가고, 기다리고, 보고, 그러면서 반나절은 가버린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영화가 끝나고 이것저것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캐치볼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느는 것이다. 재작년에 영화 <각설탕>과 <카>를 볼 때만 해도 영화가 한 시간을 넘어가면 힘들어 했는데 요즘에는 두 시간 정도 까지도 잘 견디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두 시간이 넘어가면 지루하니 애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쿵푸팬더>와 <월E>.
<쿵푸팬더>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동물 캐릭터들- 호랑이, 사마귀, 원숭이, 학, 뱀- 은 쿵푸의 권법들인 호권, 당랑권, 학권, 사권과 연결되고, 이 영화속에서 의미심장하게 얘기하고 있는 '세상에 우연과 비법은 없다' 또는 '모든 우연은 필연이며 비법은 이미 네안에 있다'라는 메시지는 알쏭달쏭한 동양의(?)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쿵푸팬더, 쿵푸를 하는 팬더곰이라는 유치하고 성의없이 정한 것 같은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은근히 철학적이다. 물론 그 철학적인 메시지가 워낙 이 바닥에서 많이 써먹어서 닳고 닳은 것이긴 하지만...... 무슨 일이든 간절한 것은, 심지어 그것이 식탐이라 할 지라도, 기발한 재주가 되며, 기발한 재주는 비장의 권법이 된다. 그리고 그 비장의 권법이 혹은 간절한 바램이- 영화 속에서는 포(쿵푸팬더의 영화 속 이름)의 식탐- 심지어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근데 도대체 식탐을 어떻게 권법으로 만든단 말인가! 팬더권? 식탐권? 그것도 아니면 식권? 하지만 자세하게 얘기하진 말자, 그게 바로 이영화의 줄거리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를 보는 재미니까!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전설적인 싸움 고수 오판수(백윤식)가 동네북 송병태(재희)에게 빨래짜는 걸 시키면서 "요게 싸움할 때 필요한 근육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권법의 고수가 되는 비법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울퉁불퉁한 몸을 만들고, 엄청난 거리를 뛰고, 필살의 주문을 외우고, 은밀한 곳에 먼지가 쌓인 채 숨겨져 있는 권법 책을 숙독하는 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밥하고 빨래하고 설겆이하고 청소하는 일상적이고 하찮은 행위들 속에 있다. 덧붙여 술마시는 것 속에도 권법이 숨어 있다, 이름하여 취권! 알고보면 우리가 하찮다고 느끼는 모든 일들이 쿵푸인 동시에 공부인 것이다(쿵푸는 공부의 중국식 발음이다). 소림사 주방장이 요리가 아닌 무술의 고수를 칭하는 관용어이고, 그의 무술이 부엌일이라는 평범한 행위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바로 비법이다. 영화 속에 나온 용문서처럼, 화려한 상자 속에 고이 폼나게 모셔져 있는 성문화된(?) 비법따위는 없다. 쿵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이러한 동양적?, 아니 쿵푸적? 지혜가 늘 영화 속을 흐르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게 네 안에 있느니라-
소림사 주방장이, 또는 국수집의 식탐 배달원 팬더가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속해 있는 이 평범하고 지루한 세계도 언젠가,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비범하고 신비로운 세계로 변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믿음을 우리 마음 속 한켠에 심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언젠가 포처럼 국수집을 벗어나 갑자기 '무적의 5인방'이 사는 성 한가운데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 순간 갑자기 세계는 전설이 되고 예언이 된다. 혹 그게 아니라면 지극히 평범한'나가 어느 순간,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소한 계기로 비범한 '나'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계기가 지독한 식탐이든 엄청난 비만이든 간에.
그런 희망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런 희망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멋진 일이다.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포이다.
# by | 2008/09/04 16:29 | 영화와 연극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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