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네번째 주

1. 너의 죄를 사하노라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반이 지났다. 이제 겨우 <햄릿>과 <이방인>을 읽었을 뿐인데...... 학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문학전공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의과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400쪽 가량의 책을 읽는데는 한 2주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게다가 글까지 써야 한다면, 사실 2주도 빠듯하다. 그래서 학생들의 숙제를 줄여주기로 했다. 열명씩 나누어서 격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오늘 첫 시간에 읽은 글은 피에르 바야르가 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프롤로그>이다. 이전에 이글루에 리뷰를 올린 적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이런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읽었을 법한 책을 본인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졌던 사람, 남들이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하는 책을 읽었으나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 심지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근데, 책을 어차피 읽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책'을 권해줄 필요가 있을까 싶긴하다.



내 경험을 얘기하자면, 청년의사에서 '문학과 의학' 칼럼을 쓰던 시절 <닥터 지바고>를, 에릭시걸의 <닥터스>를, <닥터노먼베쑨>을, 로빈 쿡의 스릴러물 전부를 읽지 않은 것 때문에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닥터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책들은 아직도 읽지 않았다) 단지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척 한 것 때문에 더욱, 게다가 그 책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단칼에 '지겨워', '삼류야', '수준이하야' 와 같은 말들을 남발한 경험때문에 더더욱. 심지어 그런 책들을 '문학과 의학'에 써보면 어떨까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꽤 긴 이유를 들어서 우아하게 거절했던 경험 때문에 더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남들로 부터 주워 듣기만 한 지식으로- 예를 들면 니체와 카프카의 책들이 거기에 해당할 것 같다- 상대방과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 토론을 한 적도 있다. 

사실 알고보면 누구에게나 독서라는 행위는 즐거운 행위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행위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일반인들이 독서에 대해서 갖는 두려움이 세가지 원인을 갖는다고 한다. 독서의 의무, 정독의 의무, 책에 관한 담론에 참여해야 하는, 또는 책의 내용을 남들 앞에서 제대로 얘기해야 한다는 의무. 물론 이 책은 이런 두려움들을 없애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을 읽고나면 책읽기와 관련된  나의 크고 작은 죄(?)들이 죄사함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저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하면, 책 안 읽었다고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책을 읽는, 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 조차도 너와 비슷한 종류의 죄를 지으니 괜찮아, 라고 저자는 우리를 다독거린다.   

그가 제시하는 대처요령을 한번보자. 부끄러워하지 말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이건 좀 너무하다) 그럼, 모두가 똑같으니 책읽지 말고 아는 척하자? 언뜻 생각하면, 이런 식의 결론이 나올 법한데, 저자의 메시지는 그런 류의 권고가 아니다. 그의 메시지는 평서문이 아닌 의문문이다. 책을 읽은 것과 책을 읽지 않은 것이 별 차이가 없는데, 책을 읽는다는 것, 그러니까 독서란 게 대체 뭐일까? 이게 저자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 속에 없다. 어쩌면 책을 읽은 이들의 희미한 죄의식(?) 속에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2. 포스트맨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울린다>라는 소설 속에는 포스트맨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 속에는 프랭크라는 떠돌이와 간이 식당 주인아저씨 닉과 그의 부인 코라가 등장한다. 이 세사람이 등장해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게 있을까?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 또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나쁜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 빤하다.

그건 바로, 

프랭크는 떠돌이로 닉의 식당에 취직해서 작은 식당에 불과했던 식당을 세계 제일의, 좀 심한가?, 그럼 , 미국 제일의, 이것도 좀 그런가?, 그렇다면 아쉬운 대로, 그 동네 제일의-그 동네가 어디든 간에- 식당으로 만든다는 이야기. 어때? 훌륭하지? 그럼, 코라는 뭐해? 참, 코라가 있었지. 쩝, 다시 짜보자. 알고보니 코라는 주경야독으로 식당경영학(?)을 공부하여 이 바닥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 되고, 그녀의 이런 능력은 동네제일의, 다시 보니 좀 약하네?, 식당이 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근데, 이거, 왠지 '소설'이 아니라 '성공시대' 냄새가 나는데...... 에이 인심썼다. 힌트 하나 더. 등장인물이 더 있다. 변호사와 검사, 판사가 등장한다.

그럼, 이건 어떨까? 성격차이로 이혼을 준비하던 닉과 코라는 가정법원을 찾아가고 (짜잔, 여기서 변호사, 검사, 판사 등장!), 위기에 빠진 부부를 간이 식당 종업원이었던 프랭크가 다시 화해시킨다? 솔직히 말해봐. 이게 재밌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길. 그러니 몇가지 세부 사항을 더 추가하자. 힌트 둘. '가난하지만 젊은' 프랭크와  '뚱뚱하고 매력없고 나이많은' 닉과 그의' 아름답고 섹시한' 부인 코라가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 변호사, 검사, 판사까지!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답에 가까이 갔을 것 같다. 뚱뚱하고 매력없고 나이많은 닉은 젊고 가난한 프랭크와 아름답고 섹시한 코라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해서 법원을 방문하여 자진이혼(?) 해준다, 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다시말하지만 뭐, 내가 꼭 삐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제 답은 하나일 것이다. 프랭크는 코라와 바람이 나고, 닉은 그들에게 살해당하거나 부인의 불륜을 알게 되어 둘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눈길을 '쬐끔' 끄는 이야기가 된다. 근데, 이 소설의 작가는 여기에 아주 단순한 한 가지를 더 넣는다. 그건 바로 절묘한 '타이밍'이다. 까뮈는 아마도 이 마지막 첨가물에서 <이방인>을 쓸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게 어떤 타이밍이냐고? 

길지 않은 소설이니 읽어보시길! 이글을 읽는 사람 모두!

 추신: 이번주에 읽은 <이방인>이 학생들에게 어려웠던 것 같다. 별로 새로운 글이 없다. <이방인>을 읽다가 문득 전에 읽었던 <포스트맨......>의 해설에 까뮈의 얘기가 써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다음 주는 <페스트>이다. 개인적으로 <이방인>이 <페스트> 보다는 읽기도 편하고(길이가 짧으니까), 재미있다(믿거나 말거나).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벌써 5주째가 되어 간다. 모두들 즐거운 명절과 행복한 귀향, 귀경이 함께 하시길!

by gosoo71 | 2009/10/01 23:31 | 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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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핑크 at 2009/10/07 13:07
"포스트맨...."이 내가 읽었던 책인가 기억이 가물가물..비슷하기는 한데...
Commented by 조준호 at 2009/10/08 11:32
그 책은 제가 꼭 읽어야 하겠군요,,

그런데 이방인, 페스트 등등 너무 고전 혹은 명작 아닌가요?

사실 전 아직 이방인, 페스트 안 읽어봤는데..

좀 재미있는 책으로 해봐요...

꼭 의학과 연관지어야 되는 것 아니라면..
Commented by gosoo71 at 2009/10/08 15:24
수업이 끝나고 나면 생각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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