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다섯번째 주

1. 도서관 밖으로 수업하라
수업을 하고 나면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가르친 사람이다. 이건 어떤 수업이나 마찬가진가 보다. 달리 말하면, 이 말은 무언가를 많이 알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 읽기로 한 네 권의 책, 한권이 늘어서 다섯권이 되었지만, 중 가장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한 까뮈의 책들이 드디어 끝났다. 

너무 고전위주로 짜여져 있다는 준호의 지적처럼, 나역시도, 피에르 바야르가 말하는 '집단도서관'-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추천도서의 총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만으로 커리큘럼을 짠 것 같아 약간 찔린다. 특히 까뮈의 책들은 더더욱! 왜냐하면 나머지 세 작가들과 비교해서 까뮈는 나와 별로 인연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연극을 좋아해서 선택했고, 이청준은 이 작가를 주제로 논문을 썼기 때문에 선택했고, 사폰은 재미있게 읽어서 선택했지만, 까뮈는? 까뮈는 재미있게 읽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선택했다. 왜? 집단도서관의 책이니까!

근데, 이상한 것은, 이전까지는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읽는 것을 차일 피일 미뤘는데, 막상 까뮈가 끝나고 나니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마도 수업을 위해서 사놓고 안읽은 책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페스트>를 내년 수업에 넣을 지 어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겠다. 근데, 아마도 넣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방인>과 <페스트>가 그리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소득도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알제와 오랑, 폐결핵, 까뮈가 갖고 있었던 정치적, 또는 사상적인 쟁점 등등......



<까뮈 1, 2-부조리와 반항의 정신->(올리비에 토드, 책세상), <카뮈>(데이빗 제인메로위츠, 김영사),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이방인>, <페스트>, <정의의사람들. 계엄령>, <작가수첩 II> (까뮈, 책세상). 이 책들이 올해에 까뮈를 수업하기 위해서 읽은 책들이다. 물론 다읽은 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도 있다. 이중에서 가장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책은 김영사에서 나온 책이다. '하룻밤의 지식여행'시리즈로 나온 <카뮈>는 생긴 것과는 달리 굉장히 알차다. 그림과 함께 카뮈의 생애와 주요작품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출근 길 지하철에서 까뮈의 희곡 <정의의사람들>을 읽었다. <페스트>에서 파늘루 신부는 오통판사의 아들이 페스트로 죽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페스트가 신의 의지라는 기존에 갖고 있던 신념이 흔들린다. 까뮈는 다른 작품에서도 절대적인 '선'을 상징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있다. <정의의 사람들>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도 낭만적인 테러리스트 깔리아예프가 대공의 아이들 때문에 일차 테러를 실패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조직의 스테반은 깔리아예프의 이런 나약함을 비난한다. 지금은 투옥된 깔리아예프가 자신이 죽인 대공의 부인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될까? 과연 대공비는 낭만적 테러리스트 깔리아예프를 설득하는데 성공할것인가? 짜잔!

결말은 내일 퇴근길 지하철에서

To be continued...... 

2. 덫 혹은 독
이번 주는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이전에는 수업 전체와 관련된 글을 첫 시간에 읽고, 두번째 시간에 학생이 쓴 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표를 먼저하고 '글'을 나중에 읽었다. 왜냐하면 읽어야 하는 '글'에 우리가 토론할 내용이 너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범답안을 읽고 문제를 풀수는 없잖아? 물론 책읽고 생각하는 것에 정답이라는 것이 없기는 하지만.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에 실린 <페스트>에 관한 서평을 읽었다. 저자는 자신의 글속에서 우리가 토론했던 내용의 대부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이고 쉽게 설명해놓았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직접 구입한 책이 아니라 <설득의 논리학>을 살때 사은품으로 받은 책이다. <설득의 논리학>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쉽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보다는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책들을 직접 읽고 혼자서 생각해보는 것이 백 배, 천 배 낫다. 나는 영화, 그림, 철학 등등을 쉽게 설명해주다는 책들을 믿지도 읽지도 않는다. 그들의 의견에 불만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들에게 내 즐거움-어려운 문제들을 가끔씩 생각해보면서 어쩌다가 한 번 기발한 결론에 도달하는-을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언제나 그렇듯 너무 쉬운 길은 덫이나 독(毒)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도 김용규의 모범 답안을 한 번 보자.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페스트가 더 넓은 의미로 모든 인간의 삶에 도사리고 있는 절망, 곧 죽음에 갇혀 삶과 세계에 대해 어떤 희망이나 의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하는 부조리를 뜻한다고 해석하지요.(189쪽) 

이러한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또는 간단히 '존재의 무의미성'이 바로 부조리라는 말이 가진 진정한 뜻입니다. 그래서 <페스트>를 읽을 때 종종 '페스트'라는 말 대신 '부조리' 또는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이나 '존재의 무의미성'으로 바꾸어 읽으면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지요.(191쪽)

어떤 프랑스어 사전에는 '베스트셀러'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소설 <페스트>를 예로 든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이 소설이 프랑스어 판만 500만부 팔릴 정도로 대중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별로 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이들이 지적한 까뮈가 작가로서 '스토리 텔링'에 능수능란한 작가가 아니라는 부분과도 일맥상통한다. 까뮈는 이 작품을 통해서 '페스트'라는 질병이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만들어 내는 변화무쌍하고 극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아마도 까뮈는 페스트가 만들어 내는 오랑의 '이야기'보다는 페스트라는 질병이 오랑의 사람들-주인공 리외와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만든 '통찰'의 내용과 그러한 과정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그리고 그 통찰의 내용은 김용규가 지적한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페스트라는 질병이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또는 '존재의 무의미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

까뮈는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형벌을 '무용하고 희망없는 노동'이라고 하였다. 리외는, 또는 많은 의사들은 이런 형벌에 늘 노출되어 있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삶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99퍼센트 화상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수술이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이들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서 더 절망적이다- 설명을 일상적으로  한다. 일퍼센트도 안되는 확률을 기대하고, 또는 그런 기대도 없이 그들의 삶을 연장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해야만 하는 우리들 모두가 알고 보면 리외다. 리외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 가까이에, 아니 우리 내면에, 그 내면의 저 깊은 밑바닥, 절망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무의식 속에, 그것도 아니라면, 삶을 절망해야 하는 일퍼센트의 아이러니에 속에 있다. 마치 페스트가 그러한 것처럼.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 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10쪽, <페스트>, 까뮈, 책세상)


하지만 어쩌면 '무용하고 희망없는 노동'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리외가 아니라 페스트로 죽어가는 모든 이들이며,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치료해야 하는 이들일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잠깐, 진짜,  아주 잠깐 했다.   
  

by gosoo71 | 2009/10/08 15:16 | 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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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조준호 at 2009/10/09 10:52
이 홈페이지를 학생들도 아나요? 아는 것이 더 좋을 듯 한데요...
수업후에도 계속 소통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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