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여섯번째 주

1. 데자뷔, 1960년대 작가와 91학번
질문 1. 태어나서 처음 읽었던 책은?
대답 1. 글쎄, 너무 먼 옛날이라서...... 아마도 딴 아기들처럼 그림동화를 읽지 않았을까?
질문 2. 국민학교 , 중학교,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대답2. 이것도 역시 가물가물.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읽었던 책 중에 기억나는 것은 방학 때마다 외가에서 읽었던 그림 성경책(이건 거의 백번 넘게 읽었던 것 같다)과 중학교 때 읽었던 '삼국지'이다. 누가 그랬던가?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성경'과 '삼국지'란다. 그렇고 보니, 나도 마찬가지네.
질문 3. 대학에 와서 처음 읽은 책은?
대답 3.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읽었던 책은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최인훈의 <광장>을 시작으로 <회색인>,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었던 것 같고, 순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 이후에는 김승옥과 이청준, 박상륭, 서정인의 소설들을 읽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사실 책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연극이 끝나면 쓸쓸해서 백양로의 낙엽들을 발로 차다가 '슬기샘'에서 한 권 사고, 시험이 끝나면 술마시는 메모를 확인하러 독다방의 메모지들을 확인하다가-이 시기는 비퍼가 등장하면서 끝이 난다-  '알서림'에서 한 권 사고, 생일날에는 '오늘의 책' 으로 포장된 시집을 누군가로부터 한 권 받고, 드물게 맨정신으로 집에 가는 날에는 지하철 역 입구의 '홍익서점'에서 한 권 사고. 닥치는 대로, 서점에 꽂혀 있는 대로, 선배들이 권해주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읽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대학원 수업중에 경험한 일종의 '데자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렇게 무작위로 읽었던 책들이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91년도에 읽은 작가들은 모두 196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들이었다. 그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91년도에 읽은 작가들을 2007년도에 60년대 소설을 읽는 대학원 수업에서 모두 다시 읽었다. 비록 이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그 때의 느낌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일종의 데자뷔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책꽂이를 둘러 보니 한국 문학사와 관련된 책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국문학과 전공(부전공인가?)자 인데이래서야 쓰나, 하는 생각에 고른 책이 바로 장석주의 <나는 문학이다>이다. 저자는 김소월, 김동리, 서정주가 활동했던 1930년대를 한국문학 '제 1의 부흥기'로, 1960년대를 '제2의 부흥기'로 규정하고 있다. 1960년대는 최인훈, 김승옥, 이청준과 같은 소설가들의 시대였으면서 동시에 김수영, 신동엽, 마종기와 같은 시인들의 시대이면서, 문학과 지성사의 창단멤버들인 김현, 김치수, 김병익과 같은 쟁쟁한 평론가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 시기에 이렇게 쟁쟁한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등장했던 것일까? 좀 더 넓게 보면1960년대의 한국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한글교육과 4.19혁명, 1960년대 작가들은 기술적으로나(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정신적으로(민주주의의 영향과 4.19 혁명) 이전 세대들에 비해서 성숙해졌다. 일본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글을 써야 하는 李想과 김동인의 딜레마를 이들은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 순수문학의 양대 산맥인 문지와 창비의 시작이 1960년대라는 사실은 그리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그러니 신입생 때 읽었던 작가들이 대부분 60년대 작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던 셈이다. 이제 먼 훗날 나는, 또는 내세대의 문청(문학청년을 줄인말, 근데 '멍청'과도 발음이 비슷하다)들은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 최인훈과 김승옥과 이청준의 소설들이 실려 있는 것을 보면서, 또는 김수영과 신동엽과 마종기의 시가 실려있는 것을 보면서 두번째 데자뷔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도 지금처럼 이들의 소설들을 처음 읽었던 순간들을 그리워 하겠지?   

2. '본다'에서 '보인다'까지



3. 對話
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
아빠 나라니까
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돌아가셨잖아?
계시니까.
그것뿐이야?
친구도 있으니까.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 해 주는 친구는 뭐 해?
내가 사랑하니까.
사랑은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 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도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마종기, 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이번 주는 <당신들의 천국>이다. 이청준이 나의 석사학위논문이었고 학생들에게 읽힌 글이 내 논문의 서론이어서 이번주는 별로 준비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신들의 천국>이 정치적인 알레고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글을 써왔다. 나 또한 그러한 견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작가도 단지 한 가지 사실만을 말하기 위해서 알레고리라는 장치를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순간에서 영원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소설가들이 또는 시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이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보편적인 진실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동의한다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이 갖는 가치는 단지 1970년대 정치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에 그치지 않는다.

김현의 적절한 지적처럼, 이 작품을 통해서 통치자의 윤리와 철학에 대한 통찰을 읽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접근이 의사-환자, 지배자-피지배자, 정상-환자, 육지 사람-섬 사람의 대립을 좀 더 근본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어서 <당신들의 천국>을 읽는 대신 마종기 시인의 시집 두 권을 읽었다.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와 <이슬의 눈>을 읽었는데, 첫번째 시집이 더 좋다. 이 시집의 시중에서 '戀歌 9'과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3.對話'를 수업 시간에 읽었다. 마종기 시인의 시들은 이민자의 삶과 의사의 삶 사이에서 방황한다. 해부학 교실에서 사랑을 노래하고('戀歌 9'),  강의실에서 생명을 떠올리고('第 3講義室에서'), 정신과 병동에서 죽음과 계절을  연결시키고(精神科 病棟),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의 친구들과 한국말과 한국의 골목골목을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그가 쓴 시들의 행간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쓸쓸하다.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왜냐하면 그의 나라가 보이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그의 소망은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보는' 것이다. 물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 아들의 말처럼 그 나라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다. 그럼 왜 멀어서 보이지 않는 나라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보이기를 바라니까. 달리말하면, 그는 '본다'는 자신의 행위를 '보인다'는 현실로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멀어서 안보이는 나라가 어찌 등불을 든다고 보이겠는가? 등불은 '본다'를 '보인다'로 탈바꿈시키는 일종의 자기 최면에 불과할 뿐.

등불을 드는 순간! 환하게 그의 눈앞에서, 아니 마음 속에서, 또는 희미한 기억속에서 그의 나라가 나타난다, 아니 나타날 것이다. 나타나라, 나타나라, 나타나라...... 

누구에게나 '보이기' 위해서 '봐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잊지말것, 등불을 꼭 준비하시길!

by gosoo71 | 2009/10/16 11:39 | 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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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수름.. at 2009/10/17 02:02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안 보여서, 볼 수 없어서 더 그리운 나라...세란문학회의 전설적인 선배님임에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과연 ....도대체 의과대학은 어떻게 오게 된걸까?
Commented by 학생 at 2009/10/17 10:08

이번 주에 읽은 시들 특히 좋았습니다.
특히 마종기 시인의 '인육 묻은 가운' 구절은 정말 소름이 쫙 돋았어요.
Commented by 조준호 at 2009/10/20 17:32
이번 글은 한번에 쭉 읽으면 뭔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읽으면서 내내,'역시 뭔가를 많이 하다 보면 정리를 하는 시점이 꼭 한 번은 온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정리하고 정리할까요?
그리고 왜? 나는 정리해도 정리가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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