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일곱번째 주

1. 성장이라는 절벽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을꺼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J.D.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에쿠우스>의 주인공 알랭은 스물 여섯마리의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서 정신과의사인 다이사트에게 의뢰되고, <캐리>의 주인공인 초능력자 캐리는 월경을 할 때마다 살인을 저지른다. 이들을 미치게 하고 살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성장'이다. 그러니 '성장'은 항상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은근슬쩍 일어난다,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가 너무 오래 전에 '그것', 그러니까 성장, 을 경험했기 때문에 올챙이 시절의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성장은 갑자기, 훌쩍 일어난다.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큰 애가 십개월이 되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고, '예, 아니오, 엄마, 아빠' 밖에 모르던 작은 애가 게임에서 꼴찌한 아빠를 달래 주기 위해서 '아빠, 걱정마세요. 저만 믿으세요.'라고 위로한다. 잠깐동안 얘들이 진짜 걔들 맞을까를 생각한다. 대체 언제 저렇게 커버렸을까? 

앞으로 놀랄 일은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와 코피 터지게 주먹질을 할 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몰래 민망한 야동을 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은 상상조차, 사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더 심각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른바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와 방황하는 청춘의 터널을 지나가야 하니까. 갑자기 아이들의 목소리가 변하고, 또 갑자기 속을 알 수 없는 십대가 되고, 또 또 갑자기 반항하고 제멋대로인 이십대가 된다. 어쩌면 여자문제로 심가하게 고민할 지도 모른다. 이것이 다 그 놈의 '성장'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당사자가 모른다는 것이다, 뭘?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순수했던 일상의 신화가 깨진 알랭에게 성(性)은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이었고, 캐리가 경험한 초경이라는 육체적 성장은 살인으로 얼룩진 핏빛과도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 일없이 넘어가는데, 왜 이들에게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길! 과연 우리한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우리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없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러니 우리 자신만 끔찍하고 갑작스러웠던 우리의 '성장'을 모르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많다.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주인공 홀필드의 말처럼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우리들을 절벽 앞에서 붙잡아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의 '성장'도 언제든지 더 끔찍해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단지 그 사실을 우리 자신만 모를뿐. 

성장의 절벽에서 추락하려는 다니엘 셈페레(<바람의 그림자>의 주인공)를 잡아 준 것은 '책', 그러니까 훌리안 까락스가 쓴 <바람의 그림자>였다. 그렇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의 냄새를 풍긴다. 물론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마술적 사실주의 풍의, 음, 환타스틱하고, 또 음, 미스테리어스한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대체 뭔 말인지......) 쉽게 말해서, 여러가지 장르들에서 차용한 소설적 장치들과 바르셀로나라는 이국적인 풍경이 소설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지만 결국 성장소설이라는 골격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혹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인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그녀의 모든 것을 숭배하고, 결국엔 헤어졌던 것처럼,  다니엘 또한 연상의 여인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시련을 당하고, 헤어지고, 클라라의 문제로 아버지와 대립한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아니 우리가 성장'이라는 절벽에서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를 절실하게 찾았던 것처럼, 다니엘도 자신을 성장의 절벽 앞에서 붙잡아 줄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책 속에 등장하는 책이기도 한 훌리안 까락스가 쓴 <바람의 그림자>이다. 

어떤 학생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수많은 이름들이 합해지고 나뉘어지고, 교차되는 것들을 정리하여 서평을 썼다. 신선한 생각이다. 왜나하면 <바람의 그림자>는 '성장'에 관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이름들의, 또는 인물들의 합체, 분열, 교차를, 한마디로 하면, '변신'을 다룬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과 '변신', 이 둘은 둘이면서 결국 하나이다. 왜?

누구나 '성장'을 통해서 '변신'하니까.

2. 내년에는 뭐하지?
저번 주가 너무 바빠서 이번 주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책도 다 읽는데 실패했고, 수업 때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를 정하지 않았다. 이번 주 두번째 시간은 좀 횡설수설한 듯한 느낌이다. 본래 취지는 이 번 학기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는데, 토론을 활발하게 만들지 못했다. 

학생들의 피드백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시간에 수업을 하면서, 이 번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의 토론이 별로 활발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전에는 그것이 단지 여러 학년이 섞여 있고 사람이 많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토론의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햄릿>이라는 작품을 읽고 토론을 하기로 했으면 '복수'의 의미를 주제로 잡고, <이방인>은 '정신분석'과 '까뮈'라는 인물로, <페스트>는 '의사의 윤리'와 '페스트의 의미'로, <당신들의 천국>은 '60년대 한국 작가'로, <바람의 그림자>는 '추리소설'과 '성장'으로 작품에서 토론의 주제를 잡아서 진행했으면 토론이 좀 더 활발해졌을 것이다.
학생들의 글이나 직접적인 의견을 반영해서 토론의 주제를 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토론 또는 잡담은 많이 생각하는데 도움을 준다. 자신의 주장을 좀 더 객관화시킬 수 있다. 내년에 참고해서 수업을 준비해야 겠다. 

내년에는 좀 더 현대적인 작품들로 수업을 준비할 생각이다. 다음은 후보에 오른 책들이다.

첫번째는 마종기 시인의 시집이다. 

  
두번째는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이다. 



세번째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네번째는 김훈의 <강산무진>이다.


다섯번째는 폴오스터의 <공중곡예사>이다. 
 

내년에 읽을 책들을 소개해본다. 떨린다. 아마도 한국시리즈 7차전 선발투수를 예고하는 감독의 심정이 이럴 것 같다. 한국 시리즈가 결국 7차전까지 왔다. 역대 6번째란다. 내일 선발 투수는 구톰슨(기아)과 글로버(SK). 타이거스와 와이번스의 대결이 진짜 용쟁호투이면서 용호상박이 돼가고 있다. 막강한 SK를 상대로 한 수 아래라고 여겨졌던 기아가 정말 잘 싸우고 있다. 오늘도 아쉽게 졌다. 하지만 내일은 반드시 이기리라. 혹...... 그 다음은 말하지 않으리.

호랑이에게 V10의 행운이 함께 하기를.
 
제발! 

by gosoo71 | 2009/10/22 16:29 | 문학, 의학을 이야기하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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