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교육(education)과 수련(training) 사이

utstein abbey
2007년에 배출된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100명이 조금 안 된다고 합니다. 내, 외, 산, 소-요즘도 외과, 산부인과 전문의가 우리보다 많은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와 몇 개 과를 제외하면 한 해에 나오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상위 몇 등 안에 든다고 하네요.
근데 이 많은 전문의들은 나와서 뭘 하게 될까요? 우선 이들의 선배들을 한 번 보도록 하죠. 저를 포함한 이전의 많은 전문의들도 그들처럼 전공의를 마치고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중에 많은 숫자는 교수직을 하고 있거나, 그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 동기들만해도 대학병원에 있는 사람이 4명 중 3명입니다. 제 위의 선배 둘은 모두 대학병원에 있고, 그 위의 선배들도 6명중 4명이 대학병원을 포함한 수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좀 더 위의 선배들을 살펴도 아마 이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전문의를 따게 되는 이들도 과연 그들의 선배들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될까요? 아마도 백 명중 구 십 구 명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글쎄요.....' 정도. 그나마 한 명이라는 숫자도 '만약'을 배려한 것일 뿐, 별 의미는 없다고 해야겠지요.
그렇다면 이들 '대부분'은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입니다. 잘 모르겠다는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불확실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의 운명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들의 운명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가르친 전문의들은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수련을 받고, 시험을 보고, 전문의가 되고, 교수가 된 세대입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저만해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전공의들과 (저를 포함한) 이들을 가르치는 전문의들은 응급의학과라는 무늬만 같을 뿐 과거의 환경도 앞으로의 운명도 전혀 다른 의사들인지도 모릅니다.
전공의들과 저,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은 바로 이, ‘수련’이라는 과정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한 쪽은 수련을 받는 입장이고, 다른 쪽은 수련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죠.
병원 내에 다른 모든 과들과 마찬가지로 응급의학과 또한 전공의들에게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과’가 원하는 ‘의사’를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병원 내에서는 이를 전공의 ‘교육’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전 것들을 ‘의심’하고 새로운 것을 ‘교육(education)’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전 것들을 ‘반복’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training)’하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전공의 과정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깨닫게 하는 것보다는 같은 것을 ‘반복’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권투 선수가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놀리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반복하듯이 말이죠.
제가 전공의로 응급실에서 일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전공의들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다른 선배님들처럼요. 전공의들이, 또는 응급의학과를 하려는 사람들이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 제게 이것저것 질문을 합니다. 물론 다 답변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좋은 스승이란 좋은 답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으면서요. 그래서 이 자리가 비록 답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제가 궁금했던 것들을, 또는 제 후배들이 궁금했으나 제가 대답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아니면 선배님들의 기억속에 희미하게 고민으로 남아 있던 것들을 같이 얘기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추신: 2009년 세응모 패널토의를 '시작하는 말'이다. 이전에 이글루에 포스팅했던 글을 첨삭하고 많이 줄였봤다.
# by | 2009/10/27 16:53 | 세응모 심포지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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